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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ODEN/미친개(fanfic)

조소하는 자의 자리 (4)

by 부야카샤 2019. 10. 2.

모여든 사람들이 사회자가 내뱉은 3번 후보의 신상을 파악하는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크로덴이라고 들렸는데.‘

‘크로덴이라면 그 미친개?‘

‘뭐? 미친개가 여길 왜 와?‘

‘그 놈 최전방에 있는 거 아니었어?‘

잠시 사이를 두고,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사람들 사이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웅성거림이 공기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관용구는 제각각이었으나 말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전원이 일치했다. 최전방에 있을 미친개가 이 곳에, 그것도 성황의 추천을 받아 차기 성황 후보로 들어왔다니 그게 말이 되냐.

질 나쁜 농담은 집어치우고 발표나 똑바로 하라며 훈수를 두려 사제 하나가 흥분한 얼굴로 일어섰다.

하지만 그가 불평을 채 쏟아내기도 전에, 한 발 먼저 제3자의 존재감을 알리는 소리가 무대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무거운 것이 질질 끌리는 둔탁한 소리. 체인 메일이 맞부딪히는 기척.

철컹.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단상을 주시하는 가운데, 단상 오른쪽 끝자락에서 회색으로 물들인 군화가 쑤욱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군화의 주인을 눈치 챈 사제가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친개다.

진짜 미친개가 왔다.

검은색과 회색이 반반의 비율로 섞여 옆으로 뻗어나간 머리칼, 미간에 살짝 잡히기 시작하는 강줄기, 상대가 누구든 뼛속까지 꿰뚫어버릴 듯한 날 선 눈초리, 기합이 바짝 들어 한 층 더 매서워진 얼굴, 성기사들이 군사복무 시 걸치는 무거운 군장.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미친개... 다시, 최강의 검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었다.

 

“미친개...!”

 

위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본 로하는 그 냉정하던 얼굴을 붉게 물들여가며 크로덴의 이명을 뇌까렸다.

먼저 뒤통수 친 입장에서 자랑스레 떠들 만 한 건 못 되지만 한 나라의 성황인만큼 그래도 상도는 지켜줄 줄 알았거늘, 불문율을 깨뜨리고 저 답 없는 미친 놈을 끌어들였다는 배신감에 이빨을 떨던 로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성황의 자리에 시선을 던졌고 - 우연인지 아닌지, 그만 성황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로하의 시선을 붙잡은 성황은 눈매를 가늘어뜨리고 입술 끝을 작게 움직여-

훗.

로하를 향해 코끝으로 작게 웃어준다.

 

“이...!“

 

단숨에 머리로 피가 몰린 로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 성황은 로하가 입을 채 열기도 전에 등을 돌려버렸다.

 

“저 망할 영감탱이...!”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하는 완벽하게 뚜껑이 열린 얼굴로 부들거렸다.

만약 성황과 단둘이 있었다면, 혹은 미친개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더라면, 대사제의 체면이고 뭐고 다 벗어던지고 성황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명백히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성황 염감탱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물려 분노에 영혼을 팔아버린 로하와는 대조적으로 단상 아래 객석은 마치 세상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뭉클리아를 부르짖으며 환호하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입에 자물쇠를 채웠고, 공포와 불신의 기색이 역력한 눈길로 힘 하나 안 들이고 단숨에 장내를 제압한 미친개를 응시할 뿐.

뚜벅.

크로덴은 성큼성큼 다가와 단상에 섰고, 고정된 마이크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았던 침묵을 스스로 깨뜨렸다.

 

“기호 3번, 크로덴입니다. 뽑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상.”

 

인사치레 따윈 저만치 날려버린, 필요최소한의 격식만을 차린 대사가 끝을 맺었다.

장 내의 사람들이 크로덴의 인사라고도, 연설이라고도 평하기 어려운 짧디 짧은 주장이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크로덴이 단상에서 물러나 무대 한 켠에 서 있는 뽀오옹과 뭉클리아의 곁에 나란히 선 뒤로도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고, 후보들의 눈총을 받고서야 겨우 자기 차례가 돌아왔음을 깨달은 사회자는 겨우 얼굴에 묻은 얼떨떨함을 떨쳐내고 다시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집었다.

 

“어... 짧고 강렬한 연설이었군요. 이상으로 모든 후보들의 소개를 마치는 바이니, 음...”

 

성황 후보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크로덴과 마주치게 되었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는지, 연설의 끝을 알리는 관용구를 더듬거리며 읊는 목소리에는 기운이 빠져 있다.

사회자의 고충을 이해하기라도 하는 듯, 그가 몇 번이고 말을 더듬는 형상을 노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감히 이를 책망하지 못했고...

장 내에는 사회자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당했다...”

 

로하는 쓰디쓴 어조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갔다.

완벽하게 의표를 찔려 넋이 나가고 나서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침착성을 잃은 채로 등장하여 미리 준비했을 터인 연설마저 제대로 망쳐버린 파리한 얼굴, 불안한 걸음걸이와 경직된 미소의 뽀오옹의 초라한 출현의 사연을.

그는 단순히 긴장하여 대사를 망친 것이 아니었다.

성황 후보를 소개하기 위한 장이 마련되고, 관료들이 무대며 대본 등을 준비하는 동안 성황 후보로 낙점된 자들은 미리 대기실에 모여 있었을 테니, 뽀오옹과 뭉클리아는 대기실에서 미리 크로덴과 맞닥뜨렸을 터.

매사에 아무 생각 없으며 성국의 모든 이가 기피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크로덴과 그럭저럭 좋은 사이를 유지하던 뭉클리아는 그렇다 쳐도, 평범하게 크로덴의 미친 짓에 대한 숱한 소문만을 접하며 멋대로 그의 심상을 만들어냈을 것이 분명한 뽀오옹은 실제로 풍문과 그닥 다르지 않은 그의 위용을 목격하고 단박에 전의를 상실해 버린 것이리라.

로하는 당시 솟아났던 의심암귀를 바로 밀쳐냈던 행위를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난데없이 떠오른 부자연스러운 의문을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근거 없이 출현한 의혹을 별 거 아니라며 내쳐서는 안 됐다.

뽀오옹의 안절부절못하던 태도는 정말로 악마를 보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행색이었던 것이다...

 

“대사제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창백하신데요...?”

 

젊은 사제가 걱정스럽다는 듯 로하의 얼굴색을 살폈다.

 

“괜찮을 리가 있나?! 저 미친개 때문에 잘못하면 선거에서 지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로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울화를 억누르려 필사적으로 감정을 죽였다. 맘 같아선 지금 누구 약올리냐며 잔소리를 퍼붓고 싶었지만, 이 곳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힘들기는 했지만 지금은 꾹 참고 넘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눈치 없는 부하에게 화를 내기에 앞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부터 고심해야만 했다.

 

“대사제님, 혹시 미친개가 후보로 나온 것 때문이라면 고민하실 것 없습니다. 미친개는 본디 정치에 뜻이 없는 인물이고, 또 저희들의 표는 전부 대사제님께서 쥐고 계시니 미친개가 뭔 짓을 하든 뭉클리아를 성황으로 내세우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지 않겠습니까?”

 

로하는 기가 막힌다는 듯 눈알을 부라렸다. 이런 아둔한 놈을 부하라고 데리고 나온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멍청하긴... 정말 미친개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면 성황 후보로 나섰을 리가 있겠느냐? 정녕 관심이 없었다면 자기 일이 아니니 알아서 하라고 퇴짜를 놨을 거다. 헌데 후보 제안을 받아들여 선거에 나왔다는 건 여지껏 기회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뿐, 놈도 권력에 목말라하고 있었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생각해 봐라. 디오렌의 성황 자리는 세날이나 마튼, 루칸의 왕좌나 다름없는데 거기에 관심 없다는 게 말이 될 것 같으냐?”

 

“그건...”

 

“백 번 양보해서 놈이 정치에 뜻을 두지 않는다 쳐도, 놈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선거의 흐름을 뒤집고도 남는다. 뽀옹인지 뽀오온인지는 진작에 겁먹어 꼬리를 내렸고, 뭉클리아는 성국 내에서 미친개와 가장 친분이 두터운 놈인데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얼간이 같은 놈인데, 만약 미친개가 놈을 꾀어내기라도 하면 어찌 되겠느냐? 죽 쒀서 미친개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엄습한 공포를 이기지 못 한 로하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입에 넣어 손톱을 깨작거렸다.

미친개 때문에 잘못하면 선거에서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행여 미친개가 성황이 될 경우 성국 내에 불어 닥칠 피바람의 여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약 그 미친놈이 성황이 되었다간,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명목 하에 현재 디오렌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들을 전부 척살할 터. 그 경우 제일 먼저 표적이 되는 것은 중앙/지방사제들을 아우르는 로하 자신이 될 게 틀림없다.

순간적으로 오한이 치민 로하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양팔을 감쌌다. 미친개가 성황 후보로 나왔을 뿐,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그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성황 영감탱이가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로하는 내심 이를 갈았다. 만약 진짜로 미친개가 성황이 된다면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 현 성황도 무사하지는 못 할 터이므로 설마 진짜로 미친개와 손을 잡겠느냐는 생각에 성황의 행적을 확실하게 점검하지 않은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아니, 잡념은 그만두자.

지금은 뭉클리아가 크로덴의 말재간에 넘어가지 않도록 감시하는 걸 최우선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선 한시라도 빨리 뭉클리아의 신병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어서 가자.”

 

로하가 말했다. 명령의 방향은 자신이 데려온 사제를 향해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무대에서의 일정을 마친 태양의 후보들이 오른쪽 출구로 나가는 양상을 뒤쫓고 있다.

자기소개시간은 끝났으니, 이제 선거 광고용 도화 제작을 위해 대기실로 움직이려는 것이리라. 음유시인들이 도화 제작을 위해 그림 기록기를 이용해 후보들의 형상을 남기고 간단한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도화에 넣을 관용구를 뽑을 터.

오늘 일정은 그걸로 끝이니 일을 마칠 때까지 앞에서 기다렸다가 얼른 놈을 데리고 나가도록 하자.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맞춰 설계도를 수정한 로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재만으로도 자신을 궁지로 몰아버리는 미친개가 증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뭉클리아를 성황으로 당선시킨 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미친개를 최전방에 처박아 주리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굳게 맹세하며, 로하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서둘러 몸을 던졌다.

 

 

 

 

신은 공평하게 징벌을 내린다고 했던가.

로하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동안, 3층에서 후보들의 연설을 듣던 성황도 한창 뚜껑이 열려 있었다.

미친개가 빼지 않고 성황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기까지 온 것까지는 좋았다.

모두의 의표를 찔러 장 내를 압도함으로써 로하에게 코웃음 친 것까지도 좋았다...만.

열심히 일하겠으니 믿고 표를 달라며 사정해도 모자랄 판에, 뽑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그 성의 없는 태도란.

뭐어, 지금까지 착실하게 쌓아온 미친개의 심상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표를 구걸해 봤자 사람들이 안 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권력이 탐나 같이 손까지 잡아놓고도 이딴 식으로 나와?

좋아, 알았어. 얌전히 고개를 숙여줬더니 제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려는 모양인데, 이 참에 주종관계를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마 다음 일정은 선거용 도화 제작일 테니, 당장 대기실로 내려가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구녕을 내주자.

...고 기세를 올린 것까지는 좋았으나.

성황은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발을 떼는 것을 주저하고 말았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친개를 회유하려 소수의 부하들만을 데리고 직접 마계의 틈으로 걸음했다가 형편없는 접대하며, 기껏 생각해서 내린 선물을 뇌물이라 단정 짓고 감사반에 보낸 거며, 지옥 같은 곳에서 감히 성황을 기다리게 만든 걸 조금 지적했다가 자신의 부하가 보는 앞에서 미친개에게 일방적으로 개망신을 당했던 기억이.

혹여나 밑에 내려가서 성의 없는 태도를 지적했다가 그 때처럼 미친 화술로 깔아뭉개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직접 마계의 틈을 찾았을 땐 보는 눈이 거의 없어, 자신의 부하에게 함구령을 내리는 걸로 입을 막을 수 있었지만... 지금 내려간다면 미친개뿐만이 아니라 다른 성황 후보들과 음유시인들과도 마주칠 게 틀림없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미친개를 질타했다가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면...

미친개에게 찍소리도 못 하고 수모를 겪었다는 사실이 로하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고, 음유시인들의 노래를 통해 성국 전체에 널리 퍼져 성황의 위엄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먼 이야기가 아니리라.

...뭐, 생각해 보니 굳이 지금 찾아가서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친개 머리가 보통 비상한 것도 아니니 혹시 따로 생각한 묘안이 있을지도 모르는 건데, 모든 사정을 파악한 것도 아니면서 다짜고짜 화내는 것도 어른스럽지 못하다.

도화 제작이 끝나면 성황을 지키러 돌아올 테니 그 때 점잖게 의중을 물어보도록 하자.

이는 절대로 미친개가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성황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아량을 베푸는 것 뿐.

...라고, 성황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천천히 자리를 떠나려 경직된 몸을 움직였다.

뚜껑이 열린 로하가 길길이 날뛰는 걸 보고 싶은 마음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은 참는 수밖에.

일단 얌전히 거소로 돌아가서 미친개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낼지 미리 구상이라도 해보도록 할까.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후보들의 단체샷을 기록하는 셔터음이 울린 직후.

후보들의 회견을 총괄하던 음유시인의 장(長)이 손뼉을 치며 선전용 도화 제작 종료를 알렸다. 장(長)의 작업 종결 선언에 분주히 움직이던 음유시인들은 무사히 작업을 마쳤다는 안도감의 한숨을 쉬었고, 모두 고생 많았다며 서로를 다독이며 고개를 숙였다.

겨우 끝났다.

크로덴은 불편했던 심기를 한숨으로 흘려보내며 목을 꺾어 딱딱하게 굳은 몸을 이완시켰다.

관심도 없는 성황 후보에 타의로 낙점된 것도 어이없는 마당에 성황 후보 회견이니 그림 기록이니 하는 아무래도 좋은 행사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가능한 한 빨리 일정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던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한참 전.

선거용 도화 상단에 집어넣을 관용구 획득을 위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유달리 앳된 용모의 음유시인에게 뽑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한 마디를 내뱉는 것으로 회견을 끝내버리고, 도화용 사진을 위해 그림 기록기를 꺼낸 음유시인이 한 방을 찍자마자 다 끝났으면 이만 실례하겠다며 일어난 것까지는 좋았다.

뭐, 크로덴의 날 선 눈초리와 성국 전체에서 들려오는 미친개의 소문에 잔뜩 겁을 먹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붙여보고 크로덴을 상대하는 내내 공포로 떨던 신참 음유시인에게는 좋지 않았겠지만 그런 아무래도 좋은 문제는 제쳐두고.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고 판단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 크로덴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크로덴의 기에 눌려 불쌍할 정도로 얼어붙었던 어린 음유시인의 목소리였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후보들의 단체샷이 남아 있으니 부디 기다려 달라는 햇병아리의 간원에 아주 잠시 그를 주시하다 털썩 주저앉아 상념에 잠긴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단체샷을 위해 움직여 달라는 장(長)의 주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후보들과 함께 그가 요구하는 대로 자세를 잡고 서서 단체 인증샷을 찍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찍기 직전, 가장 잘 나온 걸 건져야 한다며 여러 장을 찍고 싶어 하는 장(長)을 쏘아봄으로써 그의 기를 죽여놓기는 했지만... 그건 뭐 애교로 봐주도록 하자.

지긋지긋한 일정이 겨우 끝났다며, 크로덴은 소품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음유시인들의 틈을 가로질러 바깥세상과 유일하게 연결된 출입구를 열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얹은 순간-

 

“선배님, 잠깐만요!”

 

뭉클리아가 붉은 사제복을 펄럭이며 헐레벌떡 크로덴 쪽으로 뛰어왔다.

 

“아까 뽀오옹 경과도 잠깐 얘기했는데요... 오늘 시간 되시면 다 같이 한 잔 하러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됐다.”

 

“에이, 선배님은 1년에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회포를 풉니까. 뽀오옹 경도 아까 동의했으니 성황 후보들끼리 단합도 할 겸 같이...”

 

뭉클리아는 짧은 거절을 남기고 대기실 밖으로 나가는 크로덴의 뒤를 따르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저거 저러다 또 맞는 거 아냐?

얼떨결에 뭉클리아의 뒤를 따라붙던 뽀오옹은 대기실에서 셋이 처음 마주쳤을 때를 상기하곤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게 뻔히 보이는데도 끈질기게 권유하다니,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님 정말 모르는 건지...

어느 쪽이든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한 사람이라며 뽀오옹은 작게 혀를 찼다. 디오렌 최고의 미친개라며 성민 모두가 기피하는 저 크로덴에게 먼저 다가가 말 거는 것만으로도 뭉클리아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흔한 돌멩이 따위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 것도 같지만서도...

 

“선배님께선 항상 최전방에서 성국을 지키시느라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가셨을 거 아닙니까. 모처럼 수도까지 오셨는데 이 때 아니면 언제 노실 수 있...”

 

크로덴이 입을 열지 않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착각한 뭉클리아는 어째서 성황 후보들이 의기투합해야 하는지와 크로덴이 최전방에만 있느라 얼굴 보기 힘들다는 점을 계속하여 설파하였고, 마침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크로덴이 시끄럽다며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순간-

 

“뭉클리아 경, 여기 있었구만.”

 

크로덴의 마수로부터 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도화 제작 종료에 맞춰 대기실로 내려오던 로하 대사제가 우연을 가장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뭉클리아를 찾아 이 곳까지 친히 걸음한 로하의 모습을 발견한 크로덴의 시선이 머무른 것은 한 순간이었다.

-뭉클리아를 감시하러 왔군.

크로덴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회피하는 로하의 행색으로부터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이 곳을 찾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크로덴을 호명하기 전 잠시 머뭇거렸던 사회자의 태도와 크로덴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알아서 입을 다물었던 관중들의 외양으로 봐선 로하 대사제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은 어렵잖은 일.

뭉클리아를 내세워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던 로하의 앞에 나타난 크로덴의 존재는 의표를 찔렀다는 걸 넘어서 로하의 생명마저도 위협할 수 있는 카드로 다가왔을 테고, 살아 있는 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생존 본능이 이끄는 대로 크로덴이 뭉클리아를 구워삶아 손가락 인형으로 만들지 못하게끔 살피기 위해 뭉클리아의 신병을 확보하려 여기까지 친히 내려온 것이리라.

 

“대사제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겨우 로하의 존재를 깨달은 뭉클리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내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일세. 여기서 얘기하긴 좀 그러니 이만 자리를 뜨는 게 어떻겠나?”

 

로하는 일부러 성국 식 예절에 따라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크로덴의 곁을 지나쳐 뭉클리아의 옆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권유를 가장한 지시를 내렸다.

법률상 지위는 로하가 월등히 앞서지만, 미친개에게는 자신이 손에 쥐지 못한 실력과 군권이 있다. 오로지 자신이 맡은 임무에만 충실한 인간이니, 한낱 성기사인 지금 갑자기 자신을 건드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현재는 빛의 검으로서가 아니라 성황 후보로서 이 자리에 섰으니 괜스레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으리라.

기분 탓이라곤 생각하지만 저 날이 선 눈총을 받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미친개가 자신이 이 곳을 찾은 목적을 이미 눈치 챈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설사 알아차렸다 해도 물러날 순 없지만.

 

“저, 지금 당장 하셔야 하는 말씀이십니까? 실은 저희들끼리 모인 김에 한 잔 하자고 권하던 참이었는데요...”

 

“그래, 오는 길에 들었다네.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들려온 거니 오해는 하지 말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자네 마음도 모르는 건 아니네만... 크로덴 경은 디오렌에서 가장 바쁜 인재 아닌가. 자네 이기심으로 바쁜 사람을 붙잡아 둬선 안 되지 않겠나?”

 

뭉클리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한 투로 어린애를 타이르듯이 대꾸한다.“

 

“그치만...”

 

로하의 말에 뭉클리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침묵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자네가 나름 크로덴 경과 친분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네만, 지금은 선후배이기 이전에 같은 목표를 둔 경쟁자이지 않은가. 선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허물없이 지내는 것도 좀 보기 그렇...”

 

뭉클리아가 입을 다문 틈을 타 한 번 더 주장을 밀어붙이던 로하는 무심코 다음 말을 삼켜버렸다. 자신이 지나쳤을 터인 미친개가 등을 돌려 로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움찔.

재미있을 정도로 로하의 안색이 빛을 잃어간다. 아무 말 없이 시선만을 보내는 크로덴에게서 말 못할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테지.

 

“왜 그렇게 쳐다보는 겐가.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 로하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흐트러진 얼굴색을 어떻게든 그러모아 크로덴을 향해 허세를 부렸다.

 

“......”

 

크로덴은 짐짓 센 척하는 로하를 말없이 쏘아보다가 이윽고 입술을 작게 말아 올려 씨익 웃어보였다.

크로덴의 작은 반응에 노골적으로 동요하는 낯빛을 띄우는 로하.

무언의 압력이라는 녀석이다. 경우에 따라서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상황만 맞아 떨어진다면 주절주절 입을 터는 것보다 훨씬 효과를 볼 수 있는 법.

크로덴은 계속 입을 다문 채로 천천히 그에게 다가섰다.

딱히 대사제가 겁먹은 걸 즐기려는 건 아니다. 대사제가 겁을 먹든 말든 크로덴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신을 건드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뭉클리아를 꼬드기는데 성공한 로하가 성황의 뒤퉁수를 날리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선거 후보 노릇을 하게 된 데 대해 크로덴은 이를 갈고 있던 참이었다. 언젠가 겁도 없이 자신을 정치 싸움에 끼워 넣은 놈을 물어뜯겠다고 벼르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뭐어... 정확히는 선거에 크로덴을 끌어들인 건 성황이었고, 성황이 크로덴을 끌어들인 건 로하 계산 밖의 일이었으며, 오히려 로하도 크로덴이 선거 후보로 나선 사실에 눈에 띌 정도로 초조해 하는 걸로 봐선 나름 억울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그건 지 사정이지.

성황에게는 선거 따윈 어떻게 흘러가든 일체 신경 쓰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는 걸로 애 좀 먹일 작정이었으니(물론 실제로도 선거가 어찌 되든 관심 없기도 했고), 로하 대사제에게도 비슷한 식으로 공평하게 엿을 먹이는 게 좋을 터.

어디 한 번 똥줄 좀 타보라며, 발을 움직인 크로덴은 그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착실하게 흙빛으로 변해가는 표정을 띄우는 로하의 옆을 지나쳐-

한쪽 팔을 뻗어 로하 바로 뒤에 서 있던 뭉클리아의 어깨를 가볍게 얼싸안았다.

 

“대사제님께서 염려하시는 심정은 백 번 이해합니다만, 뭉클리아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딱 마주치게 된 것도 태양신의 은총인데 그냥 넘겨버리기도 뭐하고 말입니다. 무슨 중요한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사제로서 성기사에게 바다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얼굴에 띤 크로덴이 유들유들한 어조로 선빵을 날렸다.

 

“긴히 할 말이 있다고 내가 먼저 얘기하지 않았소. 자네가 물러나는 게 도리일 것 같소만?”

 

“그렇게 따지자면 뭉클리아가 먼저 제게 마시러 가자고 제안하지 않았습니까. 같이 성국을 개혁하자며 손을 잡아 놓고선 벌서부터 뭉클리아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적인 아집을 밀어붙이시려는 겁니까? 아니면 설마...”

 

크로덴은 뭐라 항변하려는 로하를 제지한 뒤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거의 속삭이는 것 같은 억양으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디오렌을 개혁하자고 하셨던 건 그저 성민들과 뭉클리아를 속이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고 실은 뭉클리아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뒤에서 열심히 해 드시려는 속셈이셨습니까? 대사제님께서 그럴 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찔끔!

 

“무... 무례하다! 아무리 최강의 검이라 해도 말은 가려서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모함을 하는 게요?!”

 

로하는 얼굴에 핏대를 세워 목소리를 높였다. 순간 미친개가 눈치는 드럽게 빠르다고 눈알을 부라리지만 않았어도 조금은 먹혀들어갔을지도 모를 몸짓이었다는 점이 심히 유감이지만.

 

“그래서 대사제님께서 그럴 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그저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 안타까워서 드린 말씀이니 넓은 도량으로 이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내가 이해를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좀 그... 렇지! 자네는 법 안 어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 아니었나? 경쟁자끼리 한 잔 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해도 시원찮을 판에 나서서 부추기면 어쩌자는 건가? 게다가 기사가 근무 중에 술을 마셔도 된다고 생각하나?”

 

여기서 꼬리를 내리면 지는 거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며 로하는 계속해서 크로덴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오나 선거법상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성황 후보로 등록되는 시점에서 모든 후보는 성국에서 가지는 직위나 직책보다 성황 후보로서의 직무를 우선하여 행동해야 한다는 준칙이 존재하는 이상, 소장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최강의 검보다 성황 선거 후보를 보다 우선하여 행동할 겁니다. 따라서 음주행위 그 자체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고, 선거 경쟁자끼리 함께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조항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역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귀에 거슬리는 말을 쏟아가며 차차 억지 미소의 베일을 걷어내는 크로덴을 상대하던 로하는 기가 막힌 듯한 내색을 감추는데 실패하여 한순간 말문을 떼지 못했다.

 

“아니,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난 뭉클리아에게 한시바삐 전달해야 할 말이...”

 

“정 급한 일이라면 잠시 저희를 물리고 이 자리에서 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헌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굳이 여기서 이 녀석을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건, 대사제님께서 하실 말씀이란 게 언급하신 것처럼 긴급한 사안은 아니라는 거겠죠. 대사제님이 뭉클리아의 신병을 확보해 성황 선거 날까지 이 녀석을 밖에 나가지 못하게 가두려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흥, 또 말도 안 되는 소릴. 아무래도 자네, 매일 마계의 틈에 처박혀 있다 보니 뇌가 익어버린 거...”

 

정곡을 찔렸다는 내색을 감추려 막말을 내뱉던 로하는 감정의 기색을 지우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크로덴에게서 독기와도 같은 서슬에 눌린 나머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흡사 맹수의 울음소리에 스민 초저주파에 발이 묶여버린 초식동물이 된 기분을 맛보면서 로하는 겨우겨우 얼굴 근육만을 조금씩 움직여 경직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이상 밀어붙였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로하의 등을 타고 흐른다.

머리로는 별다른 무기도 소지하지 않은 크로덴이 여기서 자신을 죽일 턱이 없다고 속삭이고 있었지만, 크로덴의 기에 눌려 경련하는 심장과 근육은 머리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음... 크로덴 경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좀 과장해서) 목숨이 걸린 문제인 만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뭉클리아를 데려가겠다고 다짐하고 내려온 로하의 각오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크로덴이 뭉클리아를 구워삶을까 두려워 서둘러 그를 빼내려 크로덴과 대립각을 세웠던 건데, 이대로 계속 대치했다간 뭉클리아는 물론이고 전혀 관계없는 잉여 후보에게까지 자기 속내가 전부 까발려지는 건 물론이고 정말 문자 그대로 인생 종 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로하를 물러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 대사제님께서 아량을 베풀어 주시는 걸로 알고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뽀오옹 경도 얼른 이리 오시죠,”

 

-이겼다.

어깨를 떠는 저 일련의 행동에 내포된 것은 분노일까 아니면 공포일까.

부들부들 떨면서도 더 이상 항의하지 못하는 로하의 태도에서 승리를 확신한 크로덴은 훗 하고 비소를 흘렸다.

 

“죄송합니다, 대사제님. 크로덴 선배도 이리 원하고 있으니... 얘기는 갔다 와서 듣겠습니다.”

 

로하는 겨우 작별인사만을 건네고 크로덴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가는 뭉클리아를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흔들리고 있다.

천하의 로하가 심사숙고하여 세운 완벽한 계획이 저 미친개 때문에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좀먹는다.

대사제는 기운이 빠지고 다리가 떨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방금 막 미친개와 언쟁을 치르다 밀렸다는 전적을 쌓았는데, 바로 주저앉기라도 했다간 미친개에게 개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이 널리 퍼질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들을 피해 로하는 피곤해지기 시작한 다리를 다독여 다소 부자연스런 움직임으로 자리를 떴다.

자신에게 밀려 의자를 빼앗겼던 성황 영감탱이 이런 기분이었던 걸까, 어떻게 하면 성황 후보를 사수하여 표를 몰아줄 수 있을까 따위를 사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