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건 죽어도 못 보겠기에, 개미 눈썹만큼이나 찾기 힘든 크로덴 생존 플래그 찾다가 미회수된 떡밥 하나가 스토리의 판도와 명예/기사도만을 쫓는 리스토의 가치관을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크로덴이 죽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고 싶지 않으니, 미회수된 포로교환권 떡밥의 가치에 대한 설은 그가 살아남을 거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포로교환권 떡밥 - 반란군을 풀어주는 대신 리스토가 포로 값을 지불한다는 내용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서약서에는 포로 값을 지불한다고만 했지, 무엇으로 어떻게 언제 얼마까지 지불할지에 대해서는 명시되지 않았죠.
포로 값이라는 게 알기 쉽게 돈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나 인력이 될 수도 있고, 명예나 기타 다른 가치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둘 이상이 될 수도 있고
교환권이 나왔을 당시에는 그저 하나의 떡밥으로만 고개를 내밀었을 뿐 크게 신경쓸 만한 건 아니었는데...
현재 성국에서 한창 내전이 벌어지는 중이고, 성국에 대한 충성심을 굳게 지켰던 크로덴이 스스로 칠성기사단 대를 끊으려 하면서, 진짜 예언 그대로 성국은 망하게 생겼습니다.
전 실세였던 로하는 이미 죽었고, 골드수저가 망하면 그 패거리도 같이 망하고 덤으로 나윌백도 사이좋게 손잡고 망합니다.
몽크도 현 최강의 검 기사단도 일단은 건재하나, 이들 모두 (전) 빛의 검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새삼스럽지만, (전) 빛의 검이 누군가요?
머리로 패륜왕을 이겨먹고, 기사단들 상대로 혼자서도 무쌍을 찍으며, 고블린 부대를 사망자 없이 제압할 뿐만 아니라, 말솜씨 하나로 검왕이 남긴 유산을 대륙 최고의 호구로 만든 기사입니다.
헌데 성국이 망하면 그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당연히 망한 성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겁니다.
성국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자가 누구냐 하면 당연 크로덴이죠. 망해가는 성국을 여지껏 유지해 온 마지막 기둥이었으니까.
만약 그가 성국을 버릴 거라면 빛의 검이었을 당시 벌써 난을 일으켰거나, 내전이 터졌을 때 누가 다치건 죽건간에 상관 없이 바로 세날로 튀었겠고, 자기 손으로 싸가지 동물왕국을 성국 역사에서 지워주겠다고 협박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성국을 일으켜 세우는 게 크로덴이 할 일이냐는 의문이 있기는 한데, 성국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는 한 결국 크로덴이 또 뒤처리를 하게 되겠죠.
그리고 크로덴이 성국 재건을 맡는다면, 리스토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자신의 행위에 의해 자신의 명예와 가치관이 크게 상처입게 될 겁니다.
리스토의 행위(라기보단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이겁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크로덴에게 세날의 자산(이라기보단 국익)을 팔아넘긴 것.
한 나라를 일으키려면 어마무시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물론 돈 말고 이것저것 다른 것도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돈)
그럼 그 재원을 어디서 찾을까요? 골드수저 패거리와 사제들한테서 뜯을까요? 거둬들이는데 시간도 걸리고 재건에 충분하다는 보증도 없을 뿐더러 넓게 보면 결국 성국에서 환수하게 될 재물인데?
일의 효율을 중시하는 크로덴의 입장에서 보자면 보다 그럴 듯한 재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세날의 국고입니다.
세날의 왕자라는 리스토가 포로 값을 지불하겠다는 무지막지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서약서를 써줬으니, 크로덴으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풀 방도를 손에 쥐고 있는 셈입니다. 성국을 재건하는 걸로 포로 값을 지불해 달라고 하면 그만이니까요.
지능/화술/기타 다른 스텟들 만땅에, 수단방법 안 가리며, 민심이나 기사도를 따지지도 않는 크로덴이 이런 좋은 방도를 내버려둘 리가 없습니다. 리스토에게서 서약서를 받아낸 이상,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리스토를 탈탈 털어먹을 게 뻔해요. 그럼 또 미친개라고 욕먹을라나 하지만 저는 사랑합니다
만약 크로덴이 이리 나오면 세날로서는 크로덴이 요구하는 대로 돈, 인력, 식량, 자원, 이 모든 것을 성국에 바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명예를 중시하는 세날이 신의 서약서를 나몰라라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서약서를 모른체 한다 해도 현재 (아델 왕자가 실종인 만큼) 리스토가 유일한 왕위계승자이니 리스토를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죠.
만약 끝까지 들어주지 않겠다고 세날이 버틴다면? 당장 나라를 일으켜야 하는 성국이나 마튼과 전쟁준비를 하는 세날이나 바로 싸우려 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성국은 세날과는 원수가 되겠죠. 심지어 크로덴은 친 세날파도 아니니.
게다가 패륜왕이 이 기회를 그냥 보고만 있지도 않을 거라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틈을 파고들겠지요. 크로덴 성격 상 자기 뒤통수를 물었던 패륜왕과 손을 잡을 거 같지는 않지만, 수단 방법 안 가리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크로덴이라면... 어쩌면 손을 잡을 것 같기도...☞☜ 그럼 세날의 미래는?? 망했어요
설령 손을 잡지 않는다 해도 패륜왕 입장에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인 상황입니다. 세날 입장에서는 하등 좋을 것이 없어요. 결국 리스토가 제멋대로 쓴 신의 서약서에 대한 책임을 세날이 질 수밖에요. 뭘 얼마나 어디까지 도와주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어쩐지 크로덴이 말발로 밀어붙일 거 같은 느낌이...
군주나 왕위계승자가 단독으로 이런 짓을 해도 반발 사기 십상인데, 심지어 리스토는 이 당시 아직 명예를 되찾지 못했으므로 이런 짓을 벌일 자격(왕위계승자가 아님)조차 없는 상태에서 일을 저질렀죠.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데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세날)에게도 자신의 정의를 지키는 것을 강요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남의 나라 반란군 도와주겠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아빠는 성국으로 쫓겨나고, 엄마는 성국 출신이며, 성국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남의 나라는 아니지 않느냐는 설도 있는데요.
로란과 허턴이 찾아와서 설득했을 때 리스토가 그들을 따라나간 시점에서, 리스토는 명예를 되찾아 세날의 왕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봐도 무방할 터입니다. 이 당시 아직은 성민+생도지만, 왕자가 되겠다고 맘먹은 이상 그는 성민이기 이전에 세날 사람(왕자)이라 봐야겠죠.
헌대 이야기가 전개되는 걸 보면... 지왕의 혼 건은 명예와 대의 때문이라고 쳐도, 무턱대고 반란군의 편을 드는 거나, 삼안이가 성국 내전에 세날을 끌어들이자는 의견을 내고 괴이체가 찬성하는데도 한 치의 의심 없이 오케이하는 점은... 리스토로 하여금 정말로 자신이 세날의 왕자라는 걸 자각은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게끔 합니다. 말로는 세날 왕자라고 하는데 하는 짓은 성국을 더 우선시한단 겁니다.
차라리 리스토가 순수 성민이었다면 모를까, 세날 왕자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의 편에 서서 반란군을 진압하러 온 정식 지휘관(그것도 성기사 최고 지위인 빛의 검)에게 반란군 수장이 망명을 요청했으니 세날 왕자로서 받아들일 거라 통보하는 것은, 국가 원수에 대한 심각한 외교적 결례임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선 성국에 대한 세날의 내정간섭으로 비춰질 우려도 있습니다.
만약 성국이 보다 제대로 돌아가는 국가였다면, 중앙에 할 줄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크로덴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려 쫓아내려 벼르는 멍청한 사제들이 득실대는 게 아니었다면, 크로덴이 보다 적극적으로 망명을 반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설사 서약서를 써주는 결과로 흐른다 해도 양쪽 국가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거고 이후 두 나라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꼬투리를 잡힐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실 세날과 성국은 성황 뭉클리아가 친 세날파라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지낸 것이지, 26년 전 공작부인이 늑대기사단의 대를 끊은 뒤로 성국과 세날의 관계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요. 두 나라가 그닥 좋은 관계도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리스토가 무턱대고 반란군 편을 든 건은... 기사 생도로서는 기사도를 지켰을지 몰라도, 세날 왕족으로서는 악수를 둔 것이죠. 그 악수란 게 바로 선술했던 포로교환 서약서구요.
성국 내전에 세날을 끌어들이자는 의견에 오케이한 거는 뭐... 기사도나 명예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호구라고 자처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삼안이는 피신시키려는 의도였으니 그렇다 쳐도, 괴이체는 진심으로 세날 파병을 말하고 있었으니.
리스토 성격 상 성국이 패륜왕 손에 떨어지면 세날도 좋을 것 없고, 성국이 어려우니까 도와주자는 심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게 문제인 겁니다.
내전에 참가하게 된 세날 병사들은 죽거나 다칠 테고, 마튼이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국으로 차출된 병력만큼 그 부분에 공백이 생길 텐데 그 부분은 대체 어떻게 메꾸려는 걸까요? 신하들의 반발이나 민심은 어떻게 달래고? 아니, 이런 건 다 집어 치우더라도 당장 목숨 걸고 도와주는데 그에 대한 대가는?
없습니다. 아무것도요. 남의 나라 내전에 발 들여놓은 세날은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보겠지만 성국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할 겁니다. 당장 리스토가 내전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에게 무슨 짓이냐며 항의할 거 같고.
도와준 데 대한 대가를 받는 것도, 불쌍하지만 남의 나라 일에 괜히 끼어들었다간 우리도 피볼 것 같으니 몸 사리려는 건 비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과거에 문크리안이 이끄는 반란군 토벌을 위해 성국이 아난에 파병 요청을 했을 때, 뭐시기 대장이 보기 좋게 깨진 뒤 힐리스는 이대로 붙었다간 부하들의 희생이 불가피함을 알아채고 뒤로 물러났죠. 그래서 크로덴이 불려가 내부분열을 유도해 박살을 내줬고, 교주님이 크로덴을 눌렀고
힐리스는 뭐 명예를 몰라 그랬겠습니까? 작중 공인 기사도 그 자체인 사람인데? 이런 문제는 명예가 어쩌니 기사도가 저쩌니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리스토가 좀 더 자신이 세날 사람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무턱대고 성국을 도와주자는데 찬성은 못 했을 테고, 바랑에게 목숨 걸고 지원군 데려오라고 왕자로서 명령을 내리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니, 세날 입장에서 보자면 삼안이 방법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닌데도;;;
보통 이럴 떈 내가 정말 이래도 되는지 한 번 고민이라도 해볼 법도 한데, 리스토는 본인이 세날 왕자라 말하면서 정작 머리 속에는 성국이 0순위입니다. 만약 빠른 시일 내로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버지가 잃은 명예를 직접 나서서 되찾아 세날의 유력한 왕위계승자가 된다 한들, 계속 그의 정통성을 걸고넘어지는 꼬리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이건 현재 리스토가 취하는 스탠스와도 직결되죠. 지금의 리스토는 세날 왕가의 후손 + 힐리스의 제자라는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명예와 기사도를 숭상하고 있거든요. 힐리스는 기사도 그 자체인 사람이고, 세날 왕가는 그 무엇보다도 명예를 중시하는 나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만약 2기가 힐리스메이커라면 리스토는 정도를 걷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리스토가 나아가는 길의 끝에는 힐리스가 아니라, 힐리스를 포함한 여러 영웅들을 뛰어넘어 왕이 되는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리스토의 눈 밖에 난 패륜왕과 크로덴 뿐만이 아니라, 그가 존경하고 따르는 힐리스마저도 그가 뛰어넘어야 할 군주상이라는 거죠.
힐리스를 뛰어넘기 위해서라도 현재 리스토의 이상이나 다름없는 명예와 기사도에 대한 가치관을 한 번은 철저하게 부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칭 주인공이라는데 그럼 한 번쯤은 멘탈붕괴도 해줘야죠. 그리고 겸사겸사 크로덴의 말뜻도 이해해줬으면 좋겠고
어쩐지 리스토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기분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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