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는 성국 역사상 첫 내전을 일으킨 건 골드수저 패거리고, 골드수저를 벼랑으로 몰아 군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건 패륜왕이며, 삼안이는 그럴 듯한 궤변을 내세우며 사람 목숨 갖고 장난질을 하고 있으며, 매눈깔은 꼴에 정의를 외치면서 수단도 안 가리고 명분도 지 손으로 갖다버리는 왕싸가지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라는 사실은 제쳐두고 그냥 괴이체를 까보고 싶었습니다.
본심 : 너 때문에 안 그래도 온 몸에 덕지덕지 사망플래그 칠하고 다니는 내 최애한테 사망플래그가 하나 더 붙었다고 이 망할 놈아
정의의 반대는 또다른 정의, 패배는 있어도 악역은 없다는 히어로메이커(=킹메이커)에서는 대놓고 악역스럽거나 흑막스럽거나 찌질한 엑스트라를 제외하면, 이 캐릭터는 정말 꼴 보기 싫다는 의견은 찾아보기 어렵죠.
(대략적인 의견 기준입니다. 히메를 보는 모든 독자로 범위를 확장하면 당연히 이야기가 다를 것이며, 물론 엑스트라가 아니어도 꼴보기 싫다는 의견을 받는 캐릭터도 물론 존재하죠)
그만큼 히메/킹메에서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각자 개성을 갖고 나름대로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할 수 있는데요.
헌데 개인적으로는 괴이체가 참 별로고...
그와는 별개로 괴이체 역시 내전에 대한 댓가를 조금은 치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근거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괴이체가 누구인지부터 간략하게 짚어볼까요.
칠성기사 중 하나인 고릴라 기사단의 단장. 헌데 이 분은 로하 사제의 혈연이란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인성이 바릅니다.
크로덴의 평가에 의하면 있는 집 자식 주제에 가난한 이를 위해 마음아파하는 놈, 타락한 성기사 가문 출신 주제에 기사도를 말하는 놈, 내가 본 녀석 중에 가장 괴상한 녀석.
단순히 정리하자면 착한 녀석입니다. 하지만 그 '착하다'는 의미를 조금 다르게 들여다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직자로서, 성기사로서, 성민 개인으로서 본다면 괴이체는 분명 사전적 의미에서의 선량한 사람이 맞습니다. 실력도 있고, 양심에 털 안 났고, 개념충만하고, 불의에 화낼 줄도 아는 인간이죠.
하지만 기사단장으로서, 즉 리더로서는... 무능합니다. 그리고 비겁합니다.
이상한가요?
괴이체는 짝퉁 매 눈깔처럼 정의를 외치면서 지 손으로 명분을 부수는 놈도 아니고, 골드수저 패거리처럼 처음부터 썩어 있는 자식도 아니며, 크로덴처럼 물불 안 가리고 밀어붙이는 성격도 아닐 뿐더러, 패륜왕처럼 침략자의 논리로 가만 있는 남의 나라에 시비털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뭉클리아처럼 아무 생각 없어서 저도 모르게 성국 최악의 허수아비 노릇을 할 인물은 더더욱 아니고요.
오히려 저 사람들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선량하고 양심있고 개념차며, 인품과 배경과 (나름대로의) 실력까지 갖추었는데 어째서 무능하며 비겁할까요?
이유는 4가지.
1. 대안 없이 정의만 외치는, 전형적인 입으로만 떠드는 모순자
괴이체는 350화 첫 등장에서부터 입으로만 정의를 말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기사도는 성기사가 지켜야 할 가장 큰 덕목이며, 백 명의 생도가 포로로 잡혀 있으니 어렵더라도 협상을 핑계로 기습을 해서는 안 된다고 크로덴의 의견에 반대하는 걸로 처음 등장했죠.
여기까지만 보면 주장이 참 그럴 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직후 크로덴이 근거를 들어 반박하자 한 마디도 못 했고, 다른 방도가 있으면 말해보라는 명령에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기세 좋게 반대한 것 치곤 끝이 초라합니다.
정말 크로덴의 방법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목숨을 걸고 막든가, 하극상이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처음부터 군말 없이 따르든가, 정 기사도를 지켜야겠다면 반대하기 전에 먼저 대안부터 모색한 다음 믿고 맡겨 달라며 상관을 설득하든가 했어야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크로덴은 괴이체의 보고서가 계기가 되어 파면(+덤으로 누명도 쓰고)된 후, 성황 후보 문제로 단 둘이 만났을 때 괴이체가 복수하러 왔냐고 묻자 뭐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냐며 웃어넘겼던 사람입니다. 만약 괴이체가 다른 방도를 떠올려 이를 근거로 설득했다면 크로덴은 제대로 들어는 줬겠죠. 크로덴이 중시하는 건 임무 완수이지 골모모처럼 부하 앞에서 체면차린답시고 개도 안 물어 갈 폼 잡는 게 아니니까요. 만약 크로덴 자신이 생각한 방법보다 더 효율적이었다면 바로 괴이체의 방법을 택했을 테고요.
허나 괴이체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죠.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일단 반대를 했는데, 상관이 조목조목 반박하니 이게 또 맞는 말이라 찍 소리도 못 하고 자긴 무능하다고 자괴할 뿐.
즉, 앞뒤 생각없이 무턱대고 반대부터 하고 본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크로덴의 방식은 기사도에 어긋난다, 포로 안전도 있다, 하지만 대안은 없다 - 괴이체 발언의 속뜻을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당신(크로덴)이 쓰려는 방법은 비인도적이며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대안은 당신 스스로 생각해야 하며, 그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합니다."
이게 말인가요 막걸린가요.
기사도에 어긋나니 자기는 반대하지만, 대안은 없으며 뒷감당도 장군이 알아서 하라는 거랑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놓곤 뒤에서 하고 싶지 않다며 혼자 깨끗한 척 궁시렁 궁시렁. 아니, 그렇게 싫으면 상황을 타파할 다른 방도를 생각해서 자기가 책임지고 진행을 해보던가!!!!
354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난민촌에 화염탄을 쏘면 난민들은 어떡하느냐고 또 반대를 합니다.
대안 없이 반대하는 건 뭐 기본이고... 괴이체가 임무 완수에 실패하여 반란군 수장이 자기 진영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총공격을 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기습을 위해 난민촌을 불태우려는 명령을 내린 데 대해 항의했죠.
헌데 재미있는 건 그 난민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국유지를 불법 점거한 범법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괴이체는 반란군을 잡아들이는 것보다 범법자의 권리를 더 걱정한다는 겁니다. 크로덴이 다짜고짜 화염탄을 날린 것도 아니고 분명 나갈 시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30분이 충분한 시간이냐는 논란은 별개), 괴이체는 자기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도 못 한 건 생각도 않고, 입으로 그렇게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본인이 직접 뭔가를 해주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상관을 설득할 대안도 못 내고 책임도 안 지면서 그저 어기댈 뿐.
491화에서 나윌백을 죽여야 한다는 크로덴의 충고도 상큼히 씹어줬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괴이체 뿐만 아니라 덤앤더머도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크로덴이 쾌락 살인마도 아니고 나윌백을 죽이라는 데는 이유가 있었죠. 것도 문답무용으로 죽이라고 한 게 아니라, 나윌백을 죽이지 못하면 너 뿐만 아니라 너를 따르는 이들이 모두 죽을 것이니 성직자로서가 아니라 리더로서 처신하라고 설명해줬음에도 불구하고요.
뭐, 거기까진 좋습니다. 원체 착한 사람이니 양심에 찔려서 못 할 수도 있겠죠.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취했어야 했는데 괴이체는 그냥 손을 놔버렸습니다. 못 죽이겠으면 산 채로 신병을 확보해서 어디 가둬놓든가, 그것도 양심에 찔리면 최소한 패륜왕과 함부로 접촉하지 못하도록 감시라도 붙이든가, 하여튼 다른 방법이라도 생각해서 실행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괴이체가 취한 행동은? '못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한 마디로 끝이예요. 심지어 덤앤더머는 옆에서 잘했다고 부추기고요. 뭉클리아와 패배의 아이콘이 성국 멸망에 일조한다는 예언이 괜히 나돈 게 아니었어
셋 다 나윌백을 죽인다는 수가 비겁하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지, 못 하면 모두가 죽는다고 크로덴이 경고까지 해줬는데도, 대안을 생각하기는커녕 나윌백을 못(안) 죽였을 경우 어떤 후폭풍이 불어닥칠지, 패륜왕이 그 틈을 어떻게 파고들지, 모두가 죽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단 거죠. 민심을 악용할 수 있는 패륜왕이 나윌백 뒤에 있다고 친절히 설명까지 해줬건만...
물론 앞으로 더 힘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야 했겠지만... 향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후폭풍을 자신이 감당할 순 있을지,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심사숙고하지 않았을 겁니다. 크로덴을 내친 이상 뒷감당을 자기들이 해야 하는데, 덤앤더머도 그렇지만 괴이체도 뒷일을 책임진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무책임하게 정의만 외친다는 증거죠. 사고치는 인간은 셋인데 감당할 자는 없다니 이 무슨;;;
제일 대박이었던 건 504화에서 괴이체가 보여줬던 태도입니다.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는 것도 그렇지만, 이 부분에서 그의 '뒷일은 생각 안 하는 무책임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죠. 그래도 여기선 대안을 내기는 했군요
괴이체는 삼안이가 말해주기 전까진 적진의 상황이 어땠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삼안이가 적 진영의 군량미 얘기를 꺼내니, 골드수저 측은 군량미가 별로 없지 않냐고 말한 걸로 봐선 적진이 어떤 상황인지도 알아볼 생각도 안 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건 일단 제쳐두고.
중요한 건 입바른 소리만 하는 답답함 + 뒷감당 생각 안 하고 어영부영 끌다가 남한테 미루는 무책임함이 또다시 나왔다는 겁니다.
나윌백 문제도 그렇고, 상중하 계책도 그렇고, 괴이체는 자신의 양심과 신념이라는 미명 하에 (허울 좋은 정의 드립이나 치면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계속 반대만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대안은 하나도 없었죠.
군량미를 확보한 골드수저를 상대하기 위해 동북기사학교 생도들을 지원군으로 부르자는 의견도, 내전 자체가 큰 죄인데 지역이 갈려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짓은 못 하겠단 이유로 결사반대를 했는데, 대신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시간도 지났고 반성도 했을 테니 크로덴을 부르자'?? 나윌백 암살을 제안하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안 가리는 크로덴은 힘들더라도 함께 해선 안된다고 단언할 땐 언제고?
크로덴을 언급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를 걷는데 타파할 묘안은 없고, 머리로는 삼안이 계책이 효율적인 걸 알아도 자기 양심상 그런 짓은 못 하겠으니 결국 크로덴을 불러서 뒷처리를 떠넘기려는 것뿐입니다. 크로덴은 수단을 가리는 타입이 아니니 비겁하다 싶은 수도 얼마든지 쓸 수 있기도 하고, 애초에 골드수저 패거리는 크로덴이 없는 걸 알고 군을 일으켰으니 크로덴이라면 굳이 비겁한 수를 안 쓰더라도 적을 썰어버릴 테니까요.
만약 크로덴이 돌아와서 뒤처리를 해줬다면? 또 같잖은 정의 드립이나 치면서 비난이나 할 테죠.
증거는 괴이체의 대사 일부분인 '시간도 지났고 반성도 했을 테니'라는 부분입니다. 특히 더 중요한 건 '반성도 했을 테니'라는 부분.
반성이란 잘못한 사람에게 쓰는 단어입니다. 만약 괴이체가 자기 생각이 짧았다고 생각했다면 크로덴이 반성을 했을 거란 말 자체도 안 했을 거고, 삼안이의 반대에 잠시 흔들렸다며 꼬리를 내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즉, 괴이체는 자신이 옳고 크로덴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신념을 고집하고 있으면서도), 뒷감당을 해 보니 혼자선 벅차니까(신념을 지키면서 앞으로 나가긴 어려우니까) 그럴 듯한 이유를 대면서 자못 선심쓰듯 크로덴을 다시 부르자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신념을 지키려면 끝까지 지키든가, 감당이 안 되겠으면 감당도 못 할 신념을 이상으로 삼았다고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도움을 요청하든가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착한 척은 계속 해야겠고, 근데 실력이 모자라니 자꾸 문제가 생기고... 그러니 모순이 생기는 거죠.
신념을 지키겠다며 남이 차려준 밥상들(크로덴/삼안이)은 엎어버리면서, 정작 본인은 언행일치가 어려우니까 누가 떠먹여주면 좋겠다는 식으로 밑밥을 깔고(크로덴을 다시 부르면 어떻겠냐고 묻는 것), 누가 밥상을 차려주면 이게 맘에 안 드네 저게 맘에 안 드네 불평하면서 억지로 떠먹여 주면 마지못해 받아먹는 타입, 그게 괴이체입니다. 505화에서 삼안이가 로하를 죽인 매눈깔을 부르자 하니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복귀를 시킨다던가 하는 등.
505화에서 매눈깔 복귀 말고도 괴이체의 모순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전에 세날 도움을 받자는 의견에 찬성한 거 말입니다.
504화에서 지역 갈등 조장 및 심화는 안된다며 생도 지원군을 받는 건 거부해놓고 자기 나라 내전에 남의 나라를 끌어들이는 건 괜찮다??
내란이건 국지전이건 이기건 지건 일단 전쟁에 끼어드는 순간 희생이 발생합니다. 기사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걸 모르진 않겠죠.
근데 우리끼리 버티자도 아니고 세날을 끌어들인단 건, 결국 생도가 희생되는 건 안되지만 세날 병사가 희생되는 건 상관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편(생도)은 다치면 안 되지만 남(세날)은 아무래도 좋다 - 흑백논리 사고를 구사하는 자로 비춰질 우려가 있죠. 삼안이가 성기사들을 '우리 편도 아닌데 (죽든말든) 상관 없지 않냐'며 흑백논리를 보여줬는데, 괴이체 역시 이 부분에서 삼안이와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온갖 착한 척은 다 하셔놓고 결국 성민만 다치지 않으면 남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으시다?? 그게 괴이체가 말하는 대의일까요? 아니면 매눈깔처럼 괴이체도 변하기 시작하는 걸까요?
마튼과의 전쟁준비에 바쁜 세날이 아주 당연히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 근자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며, 왜 리스토는 스스로를 세날의 왕자라 칭하면서 성국 내전에 세날을 끌어들이려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그건 일단 제쳐두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괴이체의 이러한 결정 때문에 삼안이는 차린 밥상을 치웠고, 매눈깔은 여느 때처럼 배신을 때렸으며 이 때문에 뭉클리아가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받은 내 최애가 내란에 끼어들면서 또 사망플래그를 세웠고요. 망할 자식.
2. 상황이 예상치 못 한 방향(특히 나쁜 쪽)으로 흐를 때 결단력과 강단이 부족한 지휘자
496화에서 짝퉁 매 눈깔이 로하를 죽였을 때 말입니다. 괴이체는 매눈깔이 사고친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였습니다.
나윌백을 죽이라고 지시한 크로덴과 로하를 죽인 매눈깔. 괴이체의 입장에서 보면 둘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근데 크로덴은 내치고 매눈깔은 받아들였죠. 왜냐? 나윌백을 죽이라는 지시는 안 들으면 그만이지만, 로하 사망은 이미 엎어진 물인데다 솔직히 인정했다간 자기가 위험해질 게 뻔하니까요.
결국 어쩔 수 없다며 골드수저에게 덮어씌웠는데, 이는 괴이체 자신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정의와 완벽하게 모순되는 부분입니다. 비겁한 수를 제시한 크로덴은 내치면서, 똑같은 짓을 한 매눈깔은 받아들이다니요. 게다가 이 행위는 형식적으로는 괴이체가 결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상황 자체가 괴이체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에서 벌어진 거였는데, 괴이체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대신 유야무야 현실과 타협해 버렸죠. 매눈깔의 독단행동에 끌려간 셈입니다.
또 괴이체는 504화에서 크로덴 복귀를 살짝 주장해봤지만 삼안이가 절대 안된다며 반대하니 바로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삼안이가 매눈깔 복귀를 제시하자 덥석 받아들였죠. 세날의 도움을 받자는 의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을 다른 이(삼안이) 의견에 휘둘리며 갈팡질팡하거나 혹은 너무 쉽게 수긍하고 있죠. 그로 인한 후폭풍에는 그저 괴로워할 뿐이구요.
510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안이가 몰래 계책을 쓴 덕에 동서가 갈려 싸우게 되었고, 결국 괴이체도 두 손들고 서쪽 출신들을 나인석 마을로 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끝까지 밀고나가지도 못했고, 중간에 결정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차라리 부하들에게 솔직한 심경을 토로하든가, 아님 골드수저처럼 강하게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대장이라면, 상황이 어떻게 흐르더라도 용기 있게 결단을 내린다거나 꿋꿋하게 견딜 정신력은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신념을 따르든, 혹은 신념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든간에요. 이 때문에 오명을 뒤집어쓴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요. 헌데 괴이체는 너무 착해서 그걸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게 그가 결단력과 강단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3. 살인이 유일한 방법인 상황에서 너무나도 착해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는 순교자
357화에서 로란이 적이 너보다 강하다면 어쩔 거냐고 묻자, 리스토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헌데 백성들한테도 그렇게 강요할 거냐며, 적국이 세날보다 강하다면 나라 전체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냐고 되묻자 리스토가 말을 잃었죠.
리스토 이야기이지만 이건 괴이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로란이 가정한 상황이 현재 괴이체가 겪고 있는 상황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지요. 나윌백을 죽이지 못한 거라든가, 생도 지원을 거부한 거라든가.
괴이체의 자신의 대의에 따라 결정한 내용은 부메랑이 되어 괴이체에게 손해를 입히고 그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괴이체의 선택이니 당연히 각오했을 테지만... 크로덴을 다시 부르자고 한 걸로 봐선 각오가 덜 된 듯 문제는 괴이체 뿐만이 아니라 괴이체의 부하들도 똑같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점이죠. 괴이체를 따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괴이체가 손해를 감수하는 거야 자기가 결정한 거니까 어쩔 수 없지만, 리더 괴이체를 따르는 부하들은요?
괴이체는 고릴라 기사단장일 뿐만 아니라, 역사상 첫 발발한 성국 내전에서 고릴라/전 성황 패밀리를 이끄는 리더이기도 합니다. 헌데 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자신을 덮쳤음에도 불구하고, 괴이체는 '내전에 참가하는 리더로서의 대의'가 아니라 '괴이체 자신으로서의 대의'를 더 중시하고 그 신념을 그대로 밀고 나가, (의도하진 않았을지라도) 그 신념을 부하들에게도 강요하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살인이 유일한 방법인 상황이 잘못된 거 아니냐는 설도 있는데... 괴이체는 그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내전에 참가했습니다. 그럼 그 상황에 맞춰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살인이 유일한 방법인 상황에서 씨알도 안 먹힐 대의를 주장하여 아랫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이라고 봐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4. 바로 눈 앞까지밖에 못 보는 근시안적인 태도로 최악의 현상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리더
가장 대표적인 게 크로덴을 내친 겁니다. 물론 직접 내친 건 뭉클리아지만, 옆에서 말리는 코올에게 괴이체가 쐐기를 박았죠. 제로경을 당선시킨 것도 그렇지만, 나윌백을 죽이는 비겁한 수를 지시했단 이유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가 바로 눈 앞까지밖에 못 보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지녔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됩니다.
선거전 당시 괴이체 후보는 로하 표가 없으면 꼴찌였죠. 그래서 크로덴도 로하 사제의 혈연을 후보로 내세운 거지만...
로하는 크로덴만큼은 못 해도 나름 머리도 잘 돌아가고 라인도 잘 탑니다. 그러니 수십 년 동안 거하게 해드셨겠죠. 근데 혈연이 후보로 나왔단 이유만으로 얼씨구나 하고 표를 줄까요? 성국을 개혁하고 싶어하는 뭉클리아한테?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확실하지도 않은 가능성에 모든 걸 걸었다가 나윌백이 당선되면 어떻게 될까요?
성국은 패륜왕의 꼭두각시가 되어 전쟁의 체스말이 되었을 것이며, 죄없는 성민들이 지금 이상으로 죽어나가고, 상상 이상의 지옥도가 펼쳐졌겠죠. 크로덴 입장에선 불투명한 가능성에 미래를 거느니 차라리 제로에게 표를 줘서 일단 나윌백을 확실하게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윌백을 죽이라 한 것도 민심을 제대로 악용할 패륜왕을 막기 위해서였고요. 물론 모든 것은 패륜왕을 엿먹이기 위해
만약 괴이체가 선거에서 나윌백이 이겼으면 어떻게 될지, (선술했듯이) 나윌백을 내버려뒀을 때 불어닥칠 후폭풍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봤다면, 하다못해 자기 자신이 이 일을 감당할 그릇이 될지 안 될지만 생각해봤어도, 크로덴을 내치는데 쉽사리 찬성하진 못 했을 겁니다. 허나 실제로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뜬구름이나 잡으며 비겁한 수 어쩌구에만 신경쓰느라 미래의 큰 그림은 보지도 못 하고 쫓겨나는 크로덴의 등을 떠밀었죠. 이후 성황을 버리고 튄 로하를 매눈깔이 죽여버리고, 괴이체가 이를 받아들여 골드수저랑 입씨름 벌이고, 패륜왕이 손을 뗌으로써 골드수저가 벼랑에 몰렸는데 크로덴이 쫓겨났으니 상대가 맘놓고 군을 일으키게 됐죠. 사실 이렇게 되면 사람 잘못 본 크로덴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
내전이 터진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전이 터진 뒤에 괴이체가 한 일은 상대 의견에 반대만 한 것과, 골드수저와 한 판 붙었던 것과(그마저도 지고 있었음), 신념 앞에서 흔들린 것 뿐입니다. 518화에서는 세날로 도망치는 대신 남쪽으로 병력을 집중시키긴 했네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자기 뜻과 다르게 계속 상황이 변하고 있으니 허망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신념도 흔들릴 수밖에 없겠죠. 이해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뮬레이션 게임도 아니고 현실에서 항상 계획대로만 일이 진행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사전계획을 철저히 세웠더라도 어딘가는 구멍이 나서 갑자기 상황이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갈 소지는 충분합니다. 특히 내전 같은 엄청난 사건에서는 더더욱.
근데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신념이 흔들린다? 대안없이 반대만 하고, 듣기만 좋은 정의론만 외칠 뿐,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혹은 못 하면서?
뭉클리아가 성황이던 시기에는 크로덴도 건재했고, 아직 패륜왕이 물밑작업 중이었으니 좀 더 여유가 있었을 테니 그 때라면 흔들려도 괜찮았겠죠. 근데 흔들릴 계기가 없잖아
헌데 지금 성국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입니다. 나윌백이 선거에서 당선됐으면 성국은 패륜왕의 꼭두각시가 됐을 거고, 내전에서 골드수저가 이기면 괴이체 패밀리가 박살난 다음 성국이 패륜왕의 꼭두각시가 되었겠죠.
만약 괴이체가 선거 때의 실수?를 발판으로 삼아, 당장 제 뜻대로 되지 않는 눈 앞의 현실에만 매달리는 대신 좀 더 앞을 예상했더라면, 내전에서 골드수저가 이기면 어떻게 될까만 생각해봤어도, 그 상황에서 매눈깔이 뒤통수를 쳐서 뭉클리아가 죽어가거나 부하들이 개죽음을 당하거나 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차피 매눈깔은 언젠가 뒤통수를 치겠지만
내전이 터졌고, 당장 그마저도 지고 있는데 한가롭게 신념에 흔들린다? 똥군기 잡는답시고 쿠냥 잡아들이는데 시간 낭비한 골드수저도 그렇고, 지고 있는 전쟁에서 한가롭게 신념에 흔들리기나 하는 괴이체도 둘 다 전쟁을 한다는 현실을 자각은 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입니다. 일개 병사가 이렇게 흔들려도 수비나 공격에 구멍이 생겨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열리는데, 하물며 대장이 이런 고민을 한다?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거겠죠. 이러니 무능하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요. 이건 착한 거랑은 별개로 봐야 합니다.
박쥐짓 하는 매눈깔이 참 별로이긴 하나, 최소한 현 상황과 괴이체에 대한 평가만큼은 정확히 내린 것 같아요. 평화로운 시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고뇌하며 옳은 길을 찾으려 헤매는 자를 따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과, 당장 굶어 죽는 성민이 수두룩한데 제 몸에 더러운 거 묻을까만 걱정하는. 그래봤자 뒤통수 치는 놈
내전이 터진 직후 499화에서 삼안이가 상중하 계책을 내놓았을 때 괴이체가 무턱대고 반대한 것도 근시안적인 태도에서 나온 행동이라 볼 수 있을 거예요. 최후의 전술은 성민들을 희생하는 거니까 안 되고, 수도를 불태우는 것도 안 되겠고.
솔직히 이 부분은 저도 삼안이가 너무 멀리 나갔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삼안이가 이런 극악무도한 안을 내놓은 이유는 다름아닌 괴이체의 입으로만 외치는 정의/대의, 그리고 근시안적인 태도 때문이었죠. 처음부터 정직하게 하책을 내놓았다면 성민을 내전에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며 한가하게 입씨름이나 하고 있었을 텐데, 그만큼 시간을 뺏겨 내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겁니다.
'성민을 내전에 끌어들이면 그들이 다칠 수 있다'는 눈 앞의 상황에만 매달려, '내전이 장기화되면 / 혹은 지면 그 이상으로 죄없는 성민이 죽어나간다'는 미래는 생각도 안 해봤다는 거죠 괴이체는. 크로덴처럼 혼자서 무쌍찍을 실력이 된다면야 모르겠지만 괴이체는 그 정도 실력도 안 되고 병력도 적으니 뭘 좀 해보려면 결국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점은 생각도 안 하고 눈 앞의 대의에만 매달려 반대나 하고 있으니;;;
또 생도 지원군 문제도 있었습니다. 생도 끌어들이는 건 안되는데 세날을 끌어들이는 건 괜찮다?
그 잘난 대의명분으로 크로덴을 내치는데 찬동한 괴이체 본인이 끝까지 대의를 지키려면 힘들더라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싸워야 했습니다. 헌데 실상은 세날의 지원을 받는데 동의하면서 아직 자각은 없는 것 같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크로덴과 같은 행보를 걸으려 하고 있죠. 이 부분에서 살짝 매눈깔 끼가 보입니다. 괴이체라면 아마 마지막 한 발자국 앞에서 브레이크가 걸릴 것 같지만...
성국이 패륜왕 손에 들어가면 세날도 좋을 게 없다는 걸 괴이체가 내다봐서 세날 도움을 받는 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 또한 모순입니다. 만약 괴이체가 이를 내다본 거라면 골드수저가 내전에서 승리하면 어떻게 될지도 대충 예상했다는 건데, 그럼 어째서 생도 지원을 받는 걸 거부한 걸까요? 삼안이가 세날 얘기를 꺼내기 전까진 세날 도움을 받는다는 발상은 괴이체한테 없었고, 현재 병력으로는 도저히 골드수저를 이길 수 없으며, 성국이 패륜왕 손에 들어가면 성기사고 생도고 성민이고 뭐고 죄다 총알받이가 되어 싸워야 하는데?
100% 추측이지만 괴이체는 바로 눈 앞까지밖에 못 보는 게 맞습니다. 생도 지원을 받는 걸 거부한 이유는 자기 양심에 찔려서, 그것뿐입니다. 문제는 뭔가 그럴 듯한 계책을 세운 것도 아닌, 앞일은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가짐이 이 근시안적인 태도와 맞물려 안 그래도 최악인 상황을 더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거죠. 오죽했으면 삼안이가 크로덴이 이런 기분이었겠다며 동병상련을 느끼고 전장과 대장을 갈아치우려 할까요.
이상이 괴이체가 무능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분명한 실력, 확고한 강단, 명료한 소신.
이 셋 중 단 하나만이라도 괴이체가 갖고 있었다면 삼안이가 다 차려놓은 밥상 치우는 일도 없었을 거고, 짝퉁 매 눈깔이 박쥐짓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안 그래도 최악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물론 뭉클리아가 치명상을 입을 일도 없었겠고, 크로덴도 사망플래그 하나는 줄었겠고
(물론 서두에 전제로 걸어놓은 것처럼, 스노우 삼이나 짝퉁 매 눈깔이 한 짓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괴이체도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렀으면 합니다.
한평생을 성국 뒤치다꺼리만 해온 크로덴과 방관만 했던 활활만이 걸머진다거나, 사고는 똑같이 쳐놓고 뭉클리아만 부담하는 게 아니라요.
괴이체 역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책임을 졌으면 하는 거죠.
518화를 보니까 남쪽에 아군을 집결시켰단 걸 보니까 그냥 도망간 거 같지는 않은데...과연 어떤 스탠스를 취할까요?
뭉클리아처럼 크로덴이 옳았다며 후회할지, 크로덴의 도움을 받아가며 스스로 뭔가를 해낼 것인지...
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혼자 도망가서 살기만 해봐라. 죽는다.
쓰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괴이체를 몰아붙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알 게 뭡니까. 중요한 건 내 최애 사망플래그 늘리는데 얘가 등 떠밀었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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